타인으로부터 소외된 고독한 삶은 불행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고독을 두려워합니다. 인간이 죽음다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고독이라고 합니다. 이는 인간사회에서 타인을 처벌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납니다. 인간에게 가하는 가장 일반적인 형벌은 감금입니다. 즉, 교도소에 감금하여 타인과의 관계를 강제적으로 차단하고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특히 독방수감은 가장 참기 어려운 가혹한 형벌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독, 즉 타인으로부터 차단되고 격리된 상태가 왜 고통스러운 것일까요? 고독이 괴로운 이유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존재가 비사회적 삶을 살아갈 때 고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 인자는 형상 그대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글자에는 이러한 의미가 다시 한 번 강조되어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이유는 먼저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가장 무력한 상태로 태어나는 동물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서고 걷고 뛰는 다른 동물에 비하면 인간의 신생아는 너무도 미숙합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미숙한 상태로 태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독립적 생활을 하기까지 가장 오랜 양육기간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신생아가 일어서서 걷기까지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며 스스로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까지는 2~3년이란 세월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미숙한 상태에서 태어나는 인간은 출생 시부터 장기간 부모의 보호 아래 양육되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타인의 보호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신생아가 선천적으로 행하게 되는 행동패턴 중에는 부모의 관심을 끌고 보호와 애정을 얻으려는 목적과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발달심리과학자에 따르면 신생아는 여러 가지 반사행동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반사행동 중에는 손에 무언가 닿으면 강하게 붙잡는 잡기반사가 있는데, 이는 양육자를 붙잡아 매달리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생존가치를 지닌 본능적 행동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또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아들이 삶을 보고 웃음을 짓는 배냇 웃음은 상대방을 알아보고 웃는 웃음이 아니라 부모나 양육자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본능적 행동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부모 역시 자신의 자녀에 대해 무조건적인 보호본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부모에게는 자신의 자녀가 가장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어린 자녀의 행동은 부모에게 더없이 사랑스런 재롱으로 느껴집니다. 따라서 자녀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강화되고 보호와 양육을 위한 행동이 촉진됩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어린 자녀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습니다. 위험에 빠진 자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내던지게 만드는 모성애는 부모의 무조건적 보호본능을 잘 보여 주는 예 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출생 시부터 부모와의 밀착된 관계를 통해 장기간 보호를 받아야 하는 생물학적 조건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또한 개체로서의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매우 나약한 존재입니다.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습득하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신체적 능력이 부족합니다. 날카로운 이와 발톱도 없고 신속하게 오래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불리한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약육강식의 환경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 힘을 합치는 협동적인 생활방식을 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함께 모여 사는 군집생활을 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뿔뿔이 흩어져 산 인간은 진화의 과정 속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었던 겁입니다. 인간은 집단생활을 통해 개체의 경험을 공유하고 누적시키는 과정에서 문명을 형성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신체적 나약함이라는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은 인간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 왔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구조적 여건 역시 인간을 더욱 사회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습니다.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사회는 분업화를 통해 타인의 도움 없이는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입니다. 생존의 가장 기본적 조건인 의식주의 해결을 위해서도 다른 사람의 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모든 기능이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으로부터 전문지식과 기술을 오랜 기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분업화와 전문화가 이루어진 현대 사회에서는 각자가 창출한 가치를 서로 교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교환은 타인과의 밀접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 입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교환의 영역은 점점 더 확대되고 다양해지고 있으며 교환의 방식 역시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현대인이 하루에 만나는 사람의 수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많습니다. 또한 현대인이 한평생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람의 수나 종류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많고 다양합니다. 이렇듯 현대사회의 구조적 특성은 현대인으로 하여금 많은 사람과 복잡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은 원하든 원치 않던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이 필연적으로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 왔고 공동체의 양육방식과 교육체계가 인간의 사회성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존재로서 현대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현대인에게 있어서 타인과의 관계, 즉 인간관계는 중요한 삶의 과제인 것 입니다.